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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리뷰

장률 - 경주 / 경주에 갔었다

멀고느린구름 2014. 7. 10. 18:37



경주 (2014)

7.4
감독
장률
출연
박해일, 신민아, 윤진서, 김태훈, 곽자형
정보
로맨스/멜로, 코미디 | 한국 | 145 분 | 2014-06-12
글쓴이 평점  



경주에 갔었다 



경주에 갔었다. 누구나 경주에 간 일이 있을 것이다. 나는 경주에 간 일이 세 번 있었다. 첫 경주 방문은 당연하게도 수학여행 때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부산 감천동에 있는 초등학교 5학년생이었다. 아니, 6학년생이었던가. 정확하지 않다. 정확한 것은 다음과 같은 기억이다. 경주로 가는 관광버스 속에서 나를 좋아했던 한 여자아이가 계속 쿠크다스를 권했다. 나는 수학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쿠크다스 세 상자 정도는 먹었던 것 같다. 불국사라든지, 다보탑의 아름다움 같은 것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게 첫 번째 경주는 오직 쿠크다스로 수렴될 뿐이다. 


두 번째, 경주 방문은 당시의 연인과 함께 였다. 우리는 옛 신라 왕들의 무덤 속에서 담소를 나눴고, 석양이 진 황룡사의 터에서 춤을 췄다. 경주빵을 맛있게 먹은 후 숙소에서 기억나지 않는 일로 크게 다투고 헤어졌다. 두 번째의 경주를 떠올리면 당시 연인의 미소와 쓸쓸한 뒷모습이 눈 앞에 선해진다. 


세 번째, 경주 방문은 혼자서 였다. 내가 어떻게 경주를 방문했는지, 어째서 경주여야만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버스나, 혹은 열차를 타고 나는 이른 새벽 경주에 도착했다. 그저 그 시기에 내게 경주 이외에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경주에 도착한 나는 관광안내센터에 들어가 지도를 받아 나왔지만, 그 후로 전혀 지도를 펼쳐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불국사나 왕릉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여기고 허정허정 거리를 거닐었다. 경주의 거리는 어느날 거닐었던 제기동의 골목길이기도 했고, 전주 한옥마을의 돌담길이기도 했으며, 부산 지하철 1호선의 마지막 역인 노포동의 옛 모습이기도 했다. 놀이터가 나오면 가서 그네를 탔고, 조그만 구멍가게가 나오면 가서 수박바를 사먹었다. 나는 첫 번째의 쿠크다스 소녀와 함께 거닐기도 했고, 옛 연인들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길은 길로 이어졌지만 나는 분명히 길을 잃고 있었다. 살아가는 것은 분명하되 어느 순간부터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풍경이 흐려지더니 투명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오가 되자 6월의 태양은 송곳처럼 내리쬐기 시작했고, 나는 걷다가 지쳐 거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한 여인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슬퍼 보이시네요. 하지만 저도 슬픔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있죠. 


나는 여인과 함께 낮은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의 정상에 다다르니 나와 여인이 지나온 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여인은 우리가 살아온 길이 조금 바보처럼 생겼다고 말했고, 나는 심심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여인은 내게 외롭냐고 물었고, 나는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여인은 내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어 왔다. 피구공 만큼의 무게였다. 하지만 점차 농구공이 되었다가 볼링공이 되어갔다. 나는 불현듯 외로워지기 시작했고, 여인에게 외로움을 토로했다. 그러자 여인은 기대었던 머리를 치워주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 두 사람 다 외로워서 정말 다행이라고. 여인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언덕을 내려갔다. 나는 해가 지는 모습에 넋을 잃었다가 여인이 이미 반쯤 언덕을 내려간 것을 깨닫고 그제서야 여인의 뒤를 쫓았다. 여인은 다시 한 번 내게 말했다. 


저도 슬픔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있죠. 


나는 여인의 오른손을 살며시 감싸 쥐었다. 우리는 경주에 있었다. 한 왕조가 1000년을 간 것은 전 세계를 두고 보아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는 여인에게 물었다. 


만약 천년을 살 수 있다면 어떨까요. 


여인이 말했다. 


천년 동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천국, 그렇지 않다면 지옥. 


내가 되물었다. 


사랑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여인이 말하지 않았다. 나도 다시 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하기로 한 것이었다. 기독교는 한 대상을 영원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을 통해 유지되지만, 유교는 저마다 다른, 그리고 시절마다 변하는 각각의 조상을 추모하며 유지되었다. 기독교인에게는 대상이 중요했고, 유자에게는 행위가 중요했다. 여인은 기독교인일까, 유자일까. 실례지만 유자차를 떠올리고 말았다. 우리는 언덕 아래에 있는 조그만 찻집에서 유자차를 시켜 마셨다. 유자차를 다 마시고 나자 여인은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여인이 사라져버린 자리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두 번째 경주와 첫 번째 경주를 차례로 떠올렸다. 첫 번째 경주를 먼저 살았다고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세 번째 경주를 먼저 살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이 두 번째, 그 다음에서야 첫 번째. 우리는 과연 어느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당신은 나아가고 있습니까, 돌아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 인생의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찻잔에 남은 유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지금 경주에 있습니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쯤 세 번째로 경주에 가게 될까. 나는 아직 세 번째 경주를 보지 못했다. 정오에 내가 만나야 할 한 여인은 지금 언덕의 어디쯤을 오르내리고 있으려나. 



2014. 7. 10. 멀고느린구름. 


* 이것은 아마도 영화의 리뷰일 겁니다. 그럴 생각으로 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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