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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허식을 싫어하다 (2006. 6. 14.)

멀고느린구름 2016. 2. 29. 22:53

허식 虛飾. 실속은 없이 겉만 꾸민다는 말이다.


나는 현대인의 허식이 너무 싫고, 어떤 때는 경멸스러운 감정마저 들 때가 있다. 너무 순진한 건지 나는 사람들이 허식으로 한 말을 거의 다 그대로 믿어버리곤 한다. 그말과 약속이 나중에 허식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마음에 작은 상흔이 생긴 이후이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너무 보고 싶다. 우리 언제 보자."


라고 밝은 얼굴을 가장하여 말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언제? 라고 묻곤 하는데 그럴 때 보통 상대방은 당황한다. 내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먼저 보자고 했으니 언제 볼지를 정해야겠다고 여겨 묻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대부분 허식으로 한 말일 따름인 것이다. 나의 뜻하지 않은 질문에 상대방은 능청스레 "조만간 연락할게~^^"라고 말하며 얼굴에 이모티콘을 달고는 사라진다.


그러면 그날부터 나는 휴대폰을 수시로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긴다. 조만간 언제 그 사람이 연락할지를 모르니 늘 신경을 쓰며 주시를 하는 것이다. 예전에 그 사람과 나누었던 얘기들을 떠올려 보며 이번에는 어떤 얘기를 할까하고 궁리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만나서 어디를 가서 무얼 먹을까 하고 인터넷 같은 곳을 한 번 뒤져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도 상대방은 연락하지 않는다.


그러다 또 우연히 마주치면 반가운 척을 하며 "야 반갑다! 우리 조만간 보자~^_^" 라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과는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또 어떤 경우에는 대화를 하다가 어떤 영화를 같이 보기로 약속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에 우리 그 영화 개봉하면 꼭 같이 보자^^" 그러면 나는 혼자 영화 개봉일을 기다린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같이 보러 가자고 해도 선약이 있다며 물리치고는 그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자고 친구에게 연락하고 보면 친구는 이미 다른 사람과 본 이후이다. 그 친구는 그냥 지나는 말로 이야기를 꺼낸 것 뿐이었다.


영화 뿐 아니라 이런 경우는 무척 많다. 농구를 같이 하자, 다음 주에 꼭 거기에 가자, 다음에 등산갈 때는 나를 꼭 불러, 너희 집에 차 마시러 조만간 갈게, 우리 노래방 한 번 가야지 너랑 꼭 가고 싶다, 올 여름에는 같이 여행 가자... 등등등 이런 약속들은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이런 허식적인 약속 외에도 사람들은 나와의 약속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약속 시간이 30분~ 1시간 늦는 것은 예사이고, 만남 당일날 약속이 취소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그런 것이 너무 싫고, 나에게 너무 큰 상처가 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과 만남을 꺼리다 보니 요새 들어서는 아예 사람과의 만남 자체가 의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친구에게 연락을 할 때는 내 쪽에서 미리 포기하곤 한다. 쟤가 나랑 만날 시간이 있겠어? 괜히 거절 당하고 상처 받느니 혼자 노는 게 낫지...


나와 위와 같은 허식으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왜 나에게 자기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느냐고 오히려 다그치지만 나는 거절 당하는 게 싫고, 친구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것도 싫다. 어쩌면 현대사회는 나와는 너무 맞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언가 스케쥴을 짜고 계획에 따라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나 우스꽝스럽게 생각되고 부자연스럽게 여겨진다. 달력에다 오늘은 누구, 내일은 누구, 어 미안 내일은 K를 만나야 되어서 말야. 다다음주 금요일은 어때? 이런 식의 대사들이 나는 왠지 거북하다.


나는 만나고 싶은 사람은 그냥 찾아가서 만난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든지, 다음날 중요한 시험이 있든지 상관없이 만나고 싶은 이가 있거나 반가운 이가 찾아오면 모든 걸 제쳐 두고는 달려가 만난다. 당장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반드시 나의 시간을 먼저 비워두고 상대방에게 그 시간에 만날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보는 편이다. 나는 그것이 친구간의 최소한의 예의라고 여기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나에게는 만남과 함께 있으면서 나누는 마음의 교류가 중요하지, 반가운 척, 그리운 척을 해서 허울 좋게 '친구'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는 것은 그닥 중하지 않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교감하는 일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친구 관계도 소원해지는 것이다. 그게 자연스런 모습이라고 여긴다. 자연스러운 멀어짐을 인위적이고 형식적인 방법으로 어색하게 잇고 싶은 마음은 없다.


현대인들은 관계에 대한 지나친 확장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일촌을 어떻게든 많이 맺으려고 하고, 새로운 친구를 점점 더 많이 늘려 가려고 한다. 인맥을 넓혀서 사회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심산인지, 친구가 많다는 것으로 자기의 성격좋음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인지 나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다. 싸이월드를 탈퇴하기 전에 나도 일촌목록에 꽤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주루룩 널려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목록을 보면서 나는 어떤 공포감을 느끼곤 했었다. 나는 한 사람의 연인과 두 세 사람의 친구로도 족하다.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4년 전에 어느 찻집에서 함께 차를 마시며 웃고 떠들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여전히 나의 친구라고 여길 수 있는가. 물론 넓은 의미에서는 추억 속의 친구로 포섭할 수도 있겠으나, 내 마음의 자리에서는 아마 친구의 자리를 차지하기 어려우리라. 4년 뒤 다시 만나서 또 새로운 우정의 샘물이 솟아난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다시 그이를 친구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내 성격이 직설적이고, 거짓말을 오기로 잘하지 않는 탓에 허식적인 이들로부터 받는 문화적 충격이 더 큰 것 같다. 정말 부탁하고 싶다. 하지 않을 일이라면 제발 먼저 말을 꺼내지 말아줬으면 한다. 세상에는 허식으로 건넨 말을 몇 달 동안이나 가슴에 품고 사는 나 같은 인종도 있으니까. 나는 정말 당신을 싫어하고 싶지 않다.

 

2006. 6. 14.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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