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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반양장) - 나쓰메 소세키 지음, 조영석 옮김/문학동네 |
원시적인 생산의 기능에 마음을 다하면서도, 근대적 사랑을 갈구하기도 하고, 자본주의적 삶의 싹도 조금 품고 있는 겐조의 아내는 어쩌면 나쓰메 소세키가 바라본 1904년 일본의 근대적 소시민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전근대적 세계에 갇혀 있는 겐조에게 아내는 서투른 충고를 하며 근대의 시작을 알리지만, 겐조가 보기에 근대적 삶이란 모든 인간이 돈에 의해 평가되고, 돈에 의해 본성을 잃고, 모든 관계가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대체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도도한 변화의 흐름 앞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겐조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바쁜 걸음이었다. 모두 일정한 목적지를 향해 걷는 것 같았다. 한시라도 빨리 그곳으로 가기 위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 263쪽
겐조는 문득 뭔가 써봐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열흘간 글을 쓴다.
"점점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불쾌함을 자각하면서도 그는 자기 몸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맹렬히 일했다. 마치 자기 육체에 반항이라도 하듯, 그리고 몸을 학대하기라도 하듯, 또한 자기 병에 복수라도 하듯. 그는 피에 굶주렸다. 그러나 남을 살육할 수가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자신의 피를 빨면서 만족했다." - 273쪽
나쓰메 소세키는 달라진 세계의 부정적인 모습 앞에 분노했다. 그리고 그 세계의 변모 앞에 무력한 자신에 대해서도 분노했다. 이후 10년간 그가 불세출의 걸작들을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은 위에서 묘사한 것처럼 처절하게 자신의 생명 자체를 글로 바꾸어내는 작업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눈팔기>를 읽으며 여러 정황들이 지금의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1904년 일본의 근대 지식인이 고민했던 문제를 100년이 지난 오늘날의 내가 똑같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일견 감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자본주의적 삶이라는 것은 그 겉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꾸며 본다 한들 근원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한계를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내는 것이 옳은가. 나 역시 그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서평이나 쓰며 '한눈팔기'나 하고 마는 것이다.
2013. 12. 8.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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