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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긴 소설

포플러나무 숲 사잇길 13

멀고느린구름 2012. 6. 10. 23:45





그남은 그녀의 눈 앞에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그남을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뭐야 이거..?”

“뭐긴. 크리스마스 선물이지.”

“하하. 뭐야~”


그녀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남은 어깨를 짓누르던 중력이 사라져버린 것 같이 느꼈다. 


“그리고 이것도~”


그남이 케이크를 내밀었다. 딸기 케이크였다. 며칠 전 그남이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케이크라면 역시 딸기 케이크가 정석이라고 말했었다. 그녀는 기뻤다. 심장의 무게가 더해지는 기분이 들었으나 오늘은 더 생각하지 않기로 정했다. 그남이 포장에서 촛불을 꺼냈다. 


“설마 잔인하게 나이 개수만큼 촛불을 꽂는 건 아니겠지?”


그녀의 말에 그남은 움찔하며 촛불을 도로 포장 안으로 밀어넣었다. 머쓱한 웃음. 헛기침. 그리고 그남의 생일 축하 노래가 이어졌다. 모짜르트 안의 이목이 모두 그남과 그녀의 자리로 모아졌다. 이렇게 주목 받는 생일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한 사람에게 축하 노래를 듣는 생일파티도 처음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혹은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남의 노래가 끝났다. 그남이 물었다. 


“자, 역사적인 생일파티 소감은?”

“역사적은 무슨... 그나저나 이 장미꽃다발말야... 설마 내 나이 갯수대로 산 건 아니지?”

“에? 응... 글쎄... 아마도...”

“잔인해...”

“아냐 아냐 설마 그럴리가 있겠어. 아마 열아홉 송이일 걸. 너는 아무리 봐도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그렇지?”

“응, 물론이지.”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남도 마음이 놓여 웃었다. 두 사람은 생크림의 훌륭한 맛과  갓 구운 빵의 부드러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딸기 케이크를 먹었다. 반쯤 먹었을 즈음.


“그럼, 다음 순서입니다!”


라며 그남이 기타 케이스에 손을 댔다.


“안돼! 설마 여기서 그거 연주하려는 건 아니지?!”

“아... 안 되려나 역시...”

“안돼! 절대 안돼!”


그남은 낙담한 기색이 역력했다. 허나 그녀도 양보할 수 없었다. 생일축하 노래로 낯선 타인의 이목을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랑의 세레나데라니.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남은 기타 케이스를 다시 의자에 기대었다. 자신의 왼손을 가만히 펼쳐보았다. 굳은 살이 선명했다. 이걸로 됐다와 이걸로 된 건가가 번갈아 마음을 오갔다. 결국, 이걸로 됐나? 정도가 선택되었다. 그남이 망설이는 사이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자기네를 화제로 삼아 이야기하는 것을 눈치챘다. 일어나고 싶었다. 


“그만 갈까?”

“아... 응. 그럴까.”

“응, 일어나자.”


두 사람은 모짜르트를 나왔다. 다시 에베레스트의 날씨였다. 그남은 밖으로 나오고서야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선물을 잊었음을 상기했다. 다시 들어가고 싶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속으로 자신을 꾸짖었다. 그녀는 몸을 옹송그리며 그남이 다음 가야할 곳을 알려주기를 기다렸다. 그남은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너무 춥고 피곤했다. 언제까지나 그남의 결단을 기다릴 수도 없었다. 


“그럼, 이만 집으로 갈까.”

“응, 그럴까...”


그녀는 됐다 싶으면서도 순순히 응하는 그남에게 실망했다. 아무래도 좋은 것일까. 그녀가 말했다.


“아니면,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깐 잠깐 고속버스터미널에 10시까지 앉았다 갈까?”

“응, 그래 그게 좋겠다.”


그남은 이번에도 순순히 응했다. 


“응... 가자, 그럼...”


그녀가 먼저 버스정류장 쪽으로 앞장 섰다. 그남은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안 주머니 속의 선물을 만지작거리며. 두 사람은 버스정류장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남부터미널역으로 이동했다. 다시 전철로 갈아탄 후 고속버스터미널 역에 내려 센트럴시티 쪽으로 걸었다. 항상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영풍문고 앞 분수가에 나란히 앉았다.  이번에도 먼저 말을 시작하는 쪽은 그녀였다. 


“생각나? 너 군대서 휴가 나왔을 때... 여기서 작별했던 때 말야...”

“응, 당연히 생각나지.”

“그때 말야. 기분이 참 묘했어. 꼭 말야.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는 여자아이의 마음 같았달까... 그랬어. 무척 슬프고... 다시는 너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어. 알겠니...?”

“응...”

“정말 아는 걸까? 가끔 말야. 나는 모르겠어. 네가 나를 이해하는 정도를... 10년이 넘었잖아 정말.. 너나 나나 그만큼의 세월을 감안하고 서로를 보고 있는 거야. 그런데 우리 사이에 그만큼의 이해가 더해져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쩌면 그 세월이 지나고서도 서로를 사실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 난. 그렇다면 그건 틀린 거 아닐까...”


그남은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속으로 무언가를 곱씹었다. 그녀는 그남의 그런 모습에서 확신을 구할 수 없었다. 그남의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남은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닌가. 그녀는 적어도 사랑은 궁리되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남은 외투 속의 선물을 몇 번이나 손으로 굴려보았다. 그리하다 보면 무언가 명백한 답안이 나오기라도 하는 양. 아무런 답도 나오지 않았다. 되려 생각을 멈출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하는 궁리는 멈춰지지 않았다. 마음을 잡느냐 잡지 않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그남은 알아 차리지 못했다. 갖가지 고민은 되려 진심의 빛을 바래게 할 뿐이었다. 진심은 빛과 같은 속성을 지녀서 포장하려 하면 어둠이 되는 것이었다. 그남은 그녀에게 자꾸만 포장된 선물을 내밀려 하고 있었다.  


“줄게 하나 더 있어.”


그남이 가까스로 그녀에게 전한 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뜬 달이 어둠에 가려지는 것을 느꼈다. 



2012. 6. 1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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