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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읊조리다

정종목 - 생선

멀고느린구름 2011. 1. 23. 21:57
생선

정종목



한때 넉넉한 바다를 익명으로 떠돌 적에 
아직 그것은 등이 푸른 자유였다 
고등어,참치,청어,정어리,꽁치.....그런 이름을 달고부터 
그물에 얽히고 몇 두릅씩 묶여 생선은 
도마에 오른다 도마에 올라 
두고 온 바다를 헤집는 칼날 
시퍼렇게 날을 세운 배후의 죽음을 넘보고 
살아서 지킨 육신의 토막토막 
냉동된 자유, 성에 낀 비늘을 털며 
까마득한 불면의 바다를 지탱해온 가시와 뼈를 발리우고 
부드럽게 등을 구부리고 마지막 살신을 위해 
제단 위에 오른다 석쇠 위에서 
시커멓게 알몸을 그슬려 
마침내 헛된 저의 이름마저 산산이 찢기우고 
소금을 뿌려주세요 환호처럼 은총처럼 
가슴까지 뼛속까지 황홀하게 저미도록 
오늘도 헛된 이름을 쫒아 붉은 아가미를 헐떡이며 
보이지 않는 그물 속으로 쓸려가는 고기떼,고기떼 
썩은 생선들, 백태 낀 눈알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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