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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일희일비

멀고느린구름 2020. 4. 6. 11:34

일희일비하며 코로나19의 시절을 건너가고 있다. 폐쇄되어버린 직장은 결국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고, 나는 무기한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하루는 막막하고 우울하고, 또 하루는 일상의 소소함을 그럭저럭 즐기다 작은 희망을 발견하며 지내고 있다. SNS에서도 이쪽에 가서는 총선의 난장판에 끼어들어 울분을 토로하다, 저쪽에 가서는 도인이 된 듯 안빈낙도의 삶을 전시한다.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다. 이것도 저것도 내가 아닐 수도 있고. 

 

3월 초에 익명의 은인이 거액의 후원을 해주신 덕에 정신이 무너지지 않고 지낼 수 있다. 그 후원금은 더 값지고, 나 스스로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데에 쓰고 싶어서 아직 통장에 그대로 보관하고 있지만, 큰 돈이 아직 남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상당한 의지가 되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사업실패로 갑자기 3천만 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동전 저금통에 동전이 몇 푼이 남은 게 내 재산의 전부였었다. 자살동호회를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그보다 더 오래전인 20대 초중반에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멋모르고 써버린 탓에 학생 신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부채에 시달리고, 쪽방의 월세 독촉을 피해 학교의 빈  강의실에서 몰래 잠을 자고, 뒷산의 나물을 캐러 다니기도 했다. 그런 시절을 떠올리면 요즘의 나날들은 사실 오히려 신의 은총에 가깝다. 

 

넷플릭스의 '베르사유'라는 드라마를 최근 보기 시작했는데, 태양왕 루이 14세의 궁궐생활이 흥미롭게 묘사된다. 적당한 수위의 애정신도 매회 등장하기에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현대 1인 주거인들이 시청하기에 유익한 드라마라 할 수 있겠다. 루이 14세가 머무는 궁궐의 모습이나, 등장하는 왕과 귀족들의 생활상을 보면 호화롭기 그지 없었다고 표현되던 그들의 삶이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얼마나 볼품 없는지를 알게 된다. 공간과 의복은 화려해보이기는 하지만 불편하기 짝이 없고, 음식들은 여전히 비문명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다. 17세기 유럽 최상위 계층의 생활은 21세기에 와서는 경제부국 일반 서민들의 삶의 수준보다 못한 것이 되었다. 역시 인류는 진보했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일까? 코로나19로 정기수익 0이 된 나같은 이가 루이 14세의 생활을 측은하게 평가할 수 있다니 말이다. 

 

배수아 소설가는 <독학자>에 "인생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고 썼다. 이 문장을 오래 사랑하고 있다. 나는 2010년 경에 <모두 그린란드로 간 걸까>라는 장편소설을 썼는데, 신종 바이러스에 의해 인류 대부분이 감염되어 사망하고(그 배후에는 종교단체가...), 감염되지 않은 인류가 오염되지 않은 영토를 찾아 여행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소설의 남자주인공은 몇 달간 집에서 자가격리 생활을 하는데... 바로 요즘 나의 모습이다. 과연 인생이란 참 놀랍고, 흥미롭다.

 

자, 이제 다음 페이지는 뭘까. 일희일비의 순서 정도는 지켜줬으면 좋겠다. 

 

2020. 4. 6.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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