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디 고운 봄 곱단네 가족은 연합군이 피우다 말고 버린 꽁초들을 모아 되파는 일을 했다. 이 업종은 유난히 경쟁이 치열했다. 곱단네처럼 일가족이 뛰어드는 경우도 많았다. 아직도 교전이 이어지고 있어서 위험한 경기도까지 올라갔다 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물론 대대적으로 꽁초 사업을 벌이는 경우로 운송 차량까지 두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산자락에 칠판 하나 걸어두고 열리고 있었지만 곱단 같은 다 자란 여자아이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곱단은 아직도 글을 쓰고 읽을 줄을 몰랐다. 곱단의 부모는 전쟁이 나기 전 이북에 있을 때는 제법 벌이가 되는 식료품점을 했었다. 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료품점은 군의 관리하에 들어갔고, 곱단의 아버지는 만주에서 벌인 항일독립전투 가담 경력 때문에 상사..
나 : 먼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노파 : 김곱단입니다. 나 : 네, 김곱단 할머님이시군요. 올해 연세는 어떻게 되십니까. 곱단 : 엊그제가 팔순이었어요. 나 : 아, 80세가 넘으셨는데도 이렇게 정정하시군요. 듣기로는 직접 저희 잡지사로 인터뷰 요청을 해오셨다는데, 특별한 연유가 있으십니까? 곱단 : 부끄럽지만... 제가 초등학교를 올해서야 졸업했어요. 한글도 이제 막 읽을 수 있게 되고 보니 꼭 새로 사는 것만 같고... 별 의미 없는 생이었지만, 그래도 80 먹은 노인네가 가슴에 품은 얘기 한 자락 누가 들어주면 좋겠다 싶어서 늦게 배운 글씨로 편지 한 통 보내봤지요. 나 : 네에. 그러셨군요. 편지를 보니깐 어떤 분을 찾고 계시다고 쓰셨는데 어떤 분인가요. 곱단 : 61년 전에 한 남자애를 ..
분홍저고리. 박창돈 61년 인터뷰 61년 전에 한 남자애를 만났고 마음에 품었지요.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3년 간 동거를 하던 연인과 이별하고 다니던 잡지사에 장기 휴가서를 내고 2주 째 집에 틀어박혀 있던 때였다. 부장은 최후 통첩을 했다. 이번 인터뷰를 따오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것이었다. 퇴직 당한다고 해도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매일 매일 무작정 버스를 타고 처음 보는 동네에 내려 배회하다가 동네 약국에 들러 수면제를 사오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수면제는 제법 치사량에 가깝게 모여 있던 참이었다. 부장은 내 의사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메일로 인터뷰이의 신상 명세서를 보내왔다.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이 가득한 노파의 사진을 보자마자 다음 내용은 읽지도 않고 컴퓨터를 꺼버렸었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