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는 이번에도 10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여자를 따라갔다. 여자는 딱 한 번 멈춰 서서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오랫동안 통화를 하긴 했지만 그 외엔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 부지런히 여자를 따라가다 보니 여자가 어디로 가는지 어느 순간 분명해졌다. 바람이 신선했다. 바람이 가는 곳은 여름의 끝일 터였다. " - 조해진 194P 여름을 지나가고 있다. 바람은 차가운 곳에서 뜨거운 곳을 향해 분다. 대류 현상 탓이다. 공기는 풍부한 곳에서 희박한 곳으로 움직인다. 뜨거워진 공기가 대기의 상층부로 올라가버린 빈 자리에 상대적으로 차가운 공기가 흘러와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바람이 가는 곳은 여름의 끝"이라는 말을 한참 동안 생각했다. 여름의 끝은 어디일까. 지구의 적도 부근이 역시 여름의 끝인 것일까. 계절..
작년 여름, 장재인의 '여름밤' EP 음반이 발매되었다. 음반에 수록된 동명의 타이틀곡 '여름밤'을 나는 무척 사랑하게 되어 이제 여름만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이런 날에는 역시 '여름밤'이지." 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어제와 엊그제, 그리고 오늘, 아마도 내일 역시 '여름밤'을 듣게 되지 않을까 싶다. 봄이라는 계절이 시작의 의미와 풋풋함의 정서를 지니고 있다면 역시 여름은 열정과 절정의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싱그럽게 빛나는 초록 잎새들과 쨍한 거리, 몸을 들뜨게 하는 온도. 여름에는 아무래도 청춘이 어울린다. 질주와 일탈, 무모함과 공허라는 단어들도 떠오른다. 장재인의 '여름밤'에는 어쩐지 그런 모든 것들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대체로 나의 여름에는 이별 사건이 많았다. 아주 어린시절에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