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못에는 떨어진 별빛 같은 조명들이 촘촘하게 켜져 있다. 그녀가 수성못에 내린 까닭은 그남을 통해 오래전에 죽은 그녀의 두 번째 남자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두 번째 남자는 대구에서 태어나 강원도 양구에서 생을 마감했다. 군에서는 총기 오발 사고라고 했다. 부대에 배치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첫 야간 GOP 근무를 서던 중 전방에서 들린 동물의 기척을 듣고 깜짝 놀라 자신을 향해 총을 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날, 근무에 투입되기 전 두번 째 남자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초병 임무쯤은 식은 죽 먹기니까 걱정 말라고 했었다. 그녀가 세 번째 남자를 만날 수 있게 되기까지는 6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6년 뒤 거짓말처럼 그녀는 두 번째 남자와 관련된 모든 일들을 지워버렸고, 당연히 그남에 대해서도 지..
그남은 어두워진 풍경과 자기 옆의 빈 자리를 번갈아 바라본다.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6번 좌석을 살핀다. 그녀가 없다. 무례함을 무릅쓰고 다른 좌석도 살펴본다. 잠을 자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불쾌한 시선이 날아든다. 그녀는 없다. 다시 자리에 앉는다. 11년이다. 아무리 서로 친한 사이였다고 해도 11년이란 세월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 딱히 묻고 싶은 이야기도, 서로 반드시 나눠야할 이야기도 사실 없다. 그때 알고 지내던 그녀 쪽의 사람들의 안부라도 물을까 싶지만, 그들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실례일 것이다. 영화는 삶을 모방하고 삶은 영화를 모방한다. 그남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찾아내어 말을 건다면 후자쪽이 될 것이다. 어디선가 보지 않은 삶이란 없다. 서른이 지난 이후 삶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