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지던 밤, 우리는 청계천변을 걸었어 당신의 첫 번째 기억은 뭔가요? 그녀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런 종류의 질문에 굳이 단도직입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있을지는 나 역시 확신이 없지만. 우리는 한 달 후면 오픈할 예정이라는 청계천변에 서서 물길이 흐르는 아래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전에 우리는 영풍문고에서 처음 만났고, 그 전에는 전혀 만나지 않던 사이였으며, 서로의 본명 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운영자님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녀를 줄리아라고 불렀다. 나는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싸이월드 클럽 ‘로망띠끄’의 운영자로 1년째 활동 중이었다. 회원수는 120여명에 달했지만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은 나뿐이었고, 댓글을 달아주는 것은 그녀 뿐이었다. 불필요한 데이트 ..
지난 번 널 만났을 때 지난 번 널 만났을 때 봄이었다 우리는 벚꽃 사잇길을 나란히 걸어 낡은 까페의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어째서 벽에다 사랑과 청춘을 쓰게 되었을까 저마다의 숱한 벽 위에 쓰인 이야기는 너에게로 흘러가지 못하고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새장 속에 갇힌 새가 날개짓을 했지만 새장은 날아오르지 못했고 1990년대에 유행한 음악들에 대해서만 우리는 말할 수 있었다 서로가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우리는 변해 있었다 거리로 나와 쓸쓸한 바람을 맞았지만 마냥 쓸쓸해질 수는 없었다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왔기에 바다가 있는 도시에 대해 이야길 나눴다 아무 공통점 없는 말들이 오갔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서로가 변한 게 없다며 위로했다 우리가 알던 사람 중 더러는 꿈을 이뤘고 더러는 성공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