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 흰 / 이 백지 위의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이 백지 위의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나는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고 들었다. 그런 탓일까. 가까스로 생명을 부여받은 내 속에는 언제나 죽음으로 미끄러지려는 충동과 끈질긴 삶에 대한 의지가 공존한다. 소설 의 주인공 ‘설雪’에게는 태어나서 단 몇 시간 만을 살다가 떠난 언니가 있다. 설은 종종 생각한다. 언니가 죽지 않았다면 이 삶은 바로 언니의 것이었으리라고. 나치의 폭격으로 하얗게 폐허가 되고 만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 새로운 돌을 이어서 얹는 방식으로 도시를 재건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 바르샤바는 폭격 이전의 모습을 회복했지만 복원된 건물들에는 파괴의 상흔이 선명히 남아 있다. 설은 그 거리를 걸으며 자신 몸 속에도 언니의 시간이 아로새겨져 있음을 떠올린다. 주..
산문/리뷰 2018. 7. 2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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