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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한 여자 - 8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열린책들


우리는 누구나 유년을 지나 어른이 되고, 저녁이 되면 석양이 지는 것을 함께 바라본다


  어느 날 서점에 갔더니 인상적인 사진 한 장을 표지로 한 책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가 쓴 <남자의 자리>라는 책이었다. 모노크롬으로 된 사진 속의 여성은 많은 사연을 담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책을 열어보지는 않고 그 사진만 한참을 들여다보다 자리를 옮겼다. 

  얼마 후에 서점에 갔더니 같은 사진인데 이번에는 세피아빛깔이다. 제목은 <한 여자>라고 쓰여 있었다. 제목과 표지가 자아내는 아련한 느낌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책 날개의 저자에 대한 소개를 읽어보다가 약속 시간이 되어 서점을 서둘러 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 친구가 나에게 선물로 책을 두 권 건냈다. 놀랍게도 <남자의 자리>와 <한 여자>였다. 두 권의 책은 두 달 가량을 내 눈에 가장 잘 뜨이는 하얀 소파 옆 자리에 놓여 있었다. 언제나 사진은 인상 깊었지만 다른 책들에 밀려 손에 잡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가을이 왔다. 여름 내 정치관련 서적이나 철학서적 등을 탐독했는데, 가을이 되자 무언가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가볼 수 있는 책에 구미가 당겼다. 

 지난 휴일. 석양이 지던 저녁. 선선한 가을 바람은 창을 넘어 텅빈 서재를 휘돌았다. <남자의 자리>는 어딘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서늘하고 깊은 책. <한 여자>를 읽을 차례가 온 것이었다.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아니 에르노는 이 한 문장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이 한 문장에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프랑스 북부 해안에 위치한 노르망디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작가는 110페이지라는 작은 공간 속에 어머니의 인생을 감탄스럽게 녹여낸다. 전기라고도 할 수 있고, 수필이라고도 부를 수 있으며, 아마도 분명 소설이라고 해야하기도 할 법한 문체로 그려낸 작가의 어머니는, 작가의 어머니인 동시에 한 시대를 살아낸 보편적인 여성이기도 하다. 아니 에르노는 이보다 완벽할 수는 없다 싶을 정도의 균형 잡힌 거리에서 어머니를 바라보고 그려낸다. 덕분에 작가의 어머니였던 '한 여자'는 이 소설 속에서  완벽히 주관적인 작가의 어머니로서 등장하지만 한 편으로 대단히 객관적인 역사 속의 한 여인으로 묘사된다. 이를 통해 소설 <한 여자>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써내려간 '수필'이 되기도 하고, 시대를 살아간 한 여인의 미시사를 기록한 '역사서'가 되기도 한다.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노동자 계급이 되고, 작은 상점을 차린 소자본가가 되는 한 여자. 그 여자는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신에게 태어난 딸에게 의탁한다. 딸에게 엄격하면서도 딸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여자. 자신이 바라던 대로 딸은 성장하지만, 정작 여자는 이미 결혼해 독립한 딸의 성공을 곁에서 지켜볼 수는 없었다. 어쩌면 전쟁과 전후 시대를 살아간 대부분의 여성들(제2차 세계대전의 광기에 휩쓸렸던 모든 나라의)이 겪었을 법한 일종의 '신파 드라마'를 작가는 오히려 완벽히 자신의 경험으로 가져옴으로써 굉장히 신선한 이야기로 변모시킨다. 

  책을 읽는 내내,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때로는 험담을 늘어놓지만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 성장한 한 여성이, 자기보다 앞 서 힘겹게 언덕을 오르고 내리막길을 쓸쓸히 내려갔던 여성의 삶을 정리하면서 느꼈을 짙은 유대감, 무심한 삶과 냉혹한 죽음에 대한 회한.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져 왔던 탓이다. 대단한 수사를 내세우지 않지만 담담한 고백성사 같은 아니 에르노의 글을 자박자박 따라가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내 속의 조용한 해변가로 아득한 파도들이 스륵스륵 밀려왔다 밀려나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병문안 다니는 대목에서는 20대 중반, 내 어머니가 말기 암 선고를 받고 힘겹게 투병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그러했지만 암을 이겨내고 회복기에 있는 어머니에게도 나는 어떤 자식일까 되돌아보게 된다. 작품 속에서처럼 우리는 이제 서로 전혀 다른 사회,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런 우리가 다시 내가 어리고 어머니가 젊었던 시절처럼 하나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아니 에르노는 말한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의 어머니였기에, 내 유년기의 그 여자와 같은 여자였기에."

  어머니의 과거 속에 지금의 내가 있고, 나의 미래 속에 지금의 어머니가 있다. 그러니 우리가 만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항상 이야기할 수 있는 딸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하시던 어머니의 손을 내가 잡아주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유년을 지나 어른이 되고, 저녁이 되면 석양이 지는 것을 함께 바라보고 있는데. 



2012. 10. 8.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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