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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였던가. 아마도 예원이로 기억나는 한 아이가 물었다. 


 멀구 집에 놀러 가면 안돼?


대수롭지 않게 응이라고 대답한 뒤... 한 주가 지나보니 집에 놀러오는 아이들이 6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평소 '깔끔(?)'하다기 보다... 지저분한 것을 못 견디는 성미 탓에 집은 별로 청소할 것도 없었지만, 막상 애들이 6명이나 온다니 뭘하고 시간을 보내야할지 밥은 어찌 먹여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장난감의 날에 플레이스테이션(게임기)으로 하는 축구게임을 한 번 선보여주긴 했지만 사실 우리 집에 있는 게임 중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게임은 그거 하나뿐; 나머지는 모두 일본어로 장편소설 분량의 글들이 쏟아지는 게임들이라... 축구를 좋아하는 건우를 빼고 다른 아이들이 실망을 할 것 같아서 주말 동안 게임장을 보았다. 


오랜만에 서울까지 가서 중고로 마리오카트랑 무술 게임을 업어왔다. 여자애들은 또 게임을 좋아할 것 같지가 않아서 만화영화 상영회 준비를 했다.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로맨틱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로 결정. 그리고 저녁은 떡볶이도 생각해보았으나 자립여행 때 잔뜩 먹어봤기 때문에 중화요리로 생략.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태풍은 파주를 비껴 갔지만... 반의 반 태풍은 우리집에 직격탄으로 날아왔다.  


혼자 살던 집에 애기들이 6명이나 들어차니 일단 신발 놓는 곳부터 바닥이 보이지가 않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신기해하고 감탄하는 아이들. 음 나름 뿌듯함을 느끼며 집을 개조한 경위와 중요 포인트에 대해서 소상히 알려주려는 순간 아이들은 이미 멀구네 집을 오락실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거실에 있는 맞춤 책장에 빽빽히 꽂혀 있는 책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고 구석에 있는 게임 서랍장에만 몰려드는 참으로 정직한(?) 아가들. 


짜장면, 짬뽕을 시키는 동안 남자 아이들은 축구게임과 마리오카트에 푹 빠졌고, 예원이는 만화책 삼매경, 석란이는 인형들 구경 중. 아무튼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커피향이 가득하던 멀구하우스는 순식간에 복작복작한 어린이집이 되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영화 상영시간! 명작 로맨스 만화 <귀를 기울이면>이 대형 프로젝터 영상에서 흘러나왔다. 라고 쓰고 싶었으나... 멀구하우스 방문 당일 아침 09:03부터 12:40분까지 계속된 예원 양의 '화이트' 타령으로 결국 <화이트 : 저주의 멜로디>라는 공포영화를 보게 되었다;; 불꺼진 멀구하우스에는 몇 분 간격으로 비명 소리가 쏟아졌고... 나는 영화가 무섭다기보다는 아이들의비명 소리 때문에 옆집 앞집 뒷집 아랫집에서 찾아올까봐 두근두근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영화가 끝났다. 재밌어 한 건지, 무서워한 건지 알쏭달쏭한 모드로 영화 관람을 마친(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본 아이는 원근이 밖에 없었지만;) 아이들은 집에 혼자 가기 무섭다며 다들 엄마에게 전화걸기에 바빴다. 무사히 아이들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태풍이 쓸고 간 것 같았다. 그래도 곳곳에 아이들이 웃고 떠들던 온기가 남아 어딘가 마음이 배부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이 기대하는 것과 달랐다. 하지만 그 다름 때문에 우리들은 의외의 상황에서 웃게 되고, 그 다름을 받아들이면서 우리 자신의 좁은 세계를 넓혀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매일 마주 하라면 못하겠지만, 가을의 입구에서 만난 반의 반 태풍은 때로 적막한 우리 집에 훈훈한 온풍을 가득 채워놓고 떠났다. 감사하다. 



2012. 9. 1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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