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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살다 학교의 교육환경 때문에 주변 모텔의 영업을 제한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모텔의 영업 때문에 학교를 폐교해야 한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해외토픽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기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경기도는 대안교육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대안교육 1번지로 불리워질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대안학교가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인근 모텔에 의해 폐교 위기에 처한 파주자유학교도 그 중 한 곳이다. 파주자유학교는 2002년 초등과정 대안학교로 설립되었다. 국내에서 초등과정 대안학교로는 처음 문을 연 것이다. 이후 10년간 파주자유학교는 초중고 통합 12년 과정의 대안학교로 성장하였다. 아이들의 안정적인 교육을 위해 정식 인가를 받을 필요성을 느껴 관련 규정에 따라 환경기준에 걸맞는 학사를 건축하기 위해 땅을 사고, 자금을 모아왔다. 그러다 최근 2011년 11월 파주 헤이리 예술인 마을 인근의 성동리에 초중고 통합학사를 준공하여 본격적으로 대안학교 인가 신청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학교 건물이 들어선 곳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모텔 ‘소풍’이 영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크고 작은 민원을 제기하더니, 모텔 사장이 회장으로 있는 마을 자치단체 ‘홍익회’의 이름으로 대안학교가 모텔 옆에 있어서 건전하지 않으니, ‘대안학교를 폐교’해줄 것을 건의하는 진정서를 교육청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여기까지는 상식밖의 모텔 측이 몽니를 부리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었지만, 민원접수 후 교육청이 즉각적으로 모텔 측의 주장을 들어 학교를 폐쇄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파주자유학교는 모텔의 그러한 고발이 있기 전 이미 정식 으로 인가 절차를 해당 교육청에서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우리 사회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의 욕망에 대한 추구가 정점에 치달아 있는 우리 사회가 이미 자정 능력을 심각하게 상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경쟁적인 공교육의 폐해로 학교 폭력 문제와 아이들의 자발성 및 인성 파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지금, 아이들에게 새로운 교육의 길과 건전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기성세대가 자본주의의 폐해 말엽에 있는 러브호텔의 손을 들어 그 손으로 아이들의 건강한 배움의 터전을 파괴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나는 부끄럽다. 내가 한 일이 아니지만 그러한 기성세대 속에 나 역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몹시 부끄럽다.
모텔을 운영하는 분께서는 대안학교로 인해 얼마나 영업에 손실을 입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모텔의 기능이 과연 건전하고 상식적인 것이라 한다면 운동장에서 오전에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고작 전교생 68명의) 왜 투숙객의 유입이나 체크아웃을 방해하고, 얼마나 그 영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말인지, 그 근거와 데이터를 정확하게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텔 사장의 입장에 손을 들어 학교의 의견은 무시한 채 아이들의 배움터를 무참히 무너뜨리려고 하는 마을주민들은 그 가슴에 무엇을 품고 사시는지 묻고 싶다.
더불어 지역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는 교육청 공무원께서는 모텔과 대안학교 중, 오늘날 한국사회에 무엇이 더 교육적으로 필요한 시설이며, 여러분이 과연 어느 입장의 말을 더 경청해야 하는지, 진정 여러분이 교육청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듣고 싶다.
교육청의 통보대로라면 한국 최초의 대안초등학교로 문을 열어 지난 10년간 대안교육의 역사와 함께 뿌리내려온 파주자유학교는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는 해를 맞아 한 모텔의 민원제기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나는 바로 그 파주자유학교의 교사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묻곤 한다. 행복하니. 네가 지금 행복하면 그걸로 괜찮다. 라고. 우리를 고발하고 우리학교를 폐쇄하려는 어른들에게도 그 말을 해주고 싶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2012. 5. 1. 파주자유학교 교사 멀고느린구름.
* 정정합니다. 제가 저희 학교를 글 서두와 말미에 최초의 대안 '초등'학교라고 소개를 했는데, 다시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해보니 고양, 파주지역에서 최초이고 전국 규모에서는 2번째라고 합니다. 잘못된 정보를 알려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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