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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겨울
올해도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벌써? 라고 무심코 놀라워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벌써? 였던 것 같다. 계절도 세월도 언제나 우리에게는 '벌써'와 함께 찾아온다.
11월이 오고 있다. 잠이 오지 않아 올해 내가 쓴 소설들을 하나하나 헤아려 본다. 소설에 집중하겠노라고 야심차게 교사생활을 중단하고 나선 한 해였으니 제법 성과를 올렸어야 옳다. '어느 재즈까페', '목넘이 마을의 고양이', '문학과 사회', '천 번을 흔들려야 청춘이다', '소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내 생일선물을 잘못 사오거나 모자를 내려놓은 남자'. 이렇게 7편을 썼다. '레오...'와 '재즈'는 꽁트이니 제대로 된 중단편은 5편을 쓴 셈이다.
교사 생활을 열심히 했던 작년에도 총 7편을 썼다. 심지어 작년 초반에는 <모두 그린란드로 간 걸까>도 아직 연재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올해보다 더 쓴 셈이다.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 싶다. 아직 11월과 12월이 남아 있다고 치더라도 이 암담한 성적표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침이 쓰다.
결국, 쓴다는 일은 내가 처한 환경의 영향보다는 내 마음가짐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올해의 성적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다음 돌아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트위터로 몇 차례 예고했던 새 장편은 아직 시작하지 못할 것만 같다. 여전히 문단의 심사위원들은 내 글에 별 관심이 없고 - 오히려 요즘보다 훨씬 못 썼다고 생각하는 20대 시절에는 간간히 최종심 부근에 오르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 해마다 쌓여가는 작품 목록만이 위안이 되어줄 뿐이다.
함께 글을 쓰고 있는 친구는 "죽어서 알려지는 카프카 같은 작가도 있으니까." 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이 거북이 꼬리만큼도 없는 사람이다. 당대에 글을 쓰고, 읽히고 싶다. 완성된 무엇을 쓰기보다 써가면서 완성되어가는 소설가이고 싶다.
최근 임경선 씨가 미등단 작가의 심정을 밝힌 글을 읽었다. 또, 무라카미 하루키 씨가 등단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이야기한 산문도 읽어보았다. 심경의 변화가 조금 일기는 했으나, 그래도 여전히 유명한 신인상을 보란듯이 받으며 나서고 싶은 욕심이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세월마다 찾아오는 겨울이, 이 욕심의 온도를 조금씩 낮추어 주려나. 이 욕심은 사그라들어도 쓰고자 하는 열망만은 스러지지 않기를.
그러기 위해서 이 삶을 견디는 방법을 다시 모색해봐야겠다. 발밤발밤 올해의 눈길을 다시 걸어가며.
2014. 10. 23.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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