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버트 독 - 저녁 7시가 넘으면 불빛은 이곳 리버풀 항에만 남아. 여기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7시면 모두 집으로 돌아와 거실 한 군데만 희만 불빛을 켜두고 각자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나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시간이면 불나방처럼 빛을 좇아 리버풀항으로 가. 떠나는 사람과 돌아올 사람들을 위한 공간. 아주 오래전 아프리카에서 온 검은 사람들은 이 항구에서 영국 각지로 노예가 되어 팔려갔다지. 수백년 전의 그들의 얼굴이 아직 이 항구에 남아 있어. 그곳에 서서 검은 바다를 보면 어쩐지 단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그네들의 얼굴이 떠오르거든. 어쩌면 내 피 속에 나도 모르게 아프리카가 스며들었는지도 몰라. 이곳에서는 기상을 점치는 내기를 할 수 없겠어. 365일 중에 300일 이..
주말이면 즐겨 찾는 철원도서관.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 자전거의 둥그런 바퀴는 나를 둥근 지구의 끝까지도 데려가 줄 것만 같다. 못다쓴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는 고려대학교 캠퍼스. 고대 앞 커피 빈에서 '안녕, 구름들 3부'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비는 바라보아도 좋고 그 속에 있어도 좋다. 오랫동안 사진계에 몸담으셨던 친구가 찍어준 나의 모습. 작년부터 옷을 수급받지 못하여 저 복장이 거의 멀고느린구름이라는 캐릭터의 코스튬처럼 되어가고 있다. 월드컵 응원을 모여든 인파들. 지구 평화를 위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좋겠다. 던킨 도너츠에 있던 어여쁜 조화. 던킨도너츠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또 먹어보면 맛있고, 무엇보다 보는 재미가 있..
지난 번 널 만났을 때 지난 번 널 만났을 때 봄이었다 우리는 벚꽃 사잇길을 나란히 걸어 낡은 까페의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어째서 벽에다 사랑과 청춘을 쓰게 되었을까 저마다의 숱한 벽 위에 쓰인 이야기는 너에게로 흘러가지 못하고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새장 속에 갇힌 새가 날개짓을 했지만 새장은 날아오르지 못했고 1990년대에 유행한 음악들에 대해서만 우리는 말할 수 있었다 서로가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우리는 변해 있었다 거리로 나와 쓸쓸한 바람을 맞았지만 마냥 쓸쓸해질 수는 없었다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왔기에 바다가 있는 도시에 대해 이야길 나눴다 아무 공통점 없는 말들이 오갔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서로가 변한 게 없다며 위로했다 우리가 알던 사람 중 더러는 꿈을 이뤘고 더러는 성공했고 ..
2010. 5/18. 아이폰. 글을 쓰는 시간은 좋다. 창밖에는 비가 오고 홀로 방 안에 앉아 잔잔한 음악을 켜 놓으면 '자 글쓸 시간이다'라는 기분이 든다. 글을 쓰기 전 커피를 내려 마시며 경건히 마음을 다스리고 펜을 든다. 나는 펜 중에서 샤프를 가장 좋아한다. 자연의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필처럼 단명하지 않는다. 오래오래 함께 파트너가 될 수 있어 좋다. 보통 단편은 샤프를 사용하여 직접 노트에 쓴 후 워드로 옮긴다. 장편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나중에 워드로 수 백 페이지 글을 옳긴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져서 포기하고 처음부터 착실하게 워드로 작업한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행복해진다. 오늘도 내 몫의 삶을 살아냈구나 하는 생각. 글을 쓰는 상 위로 비쳐든 스탠드의 불빛이 예뻐서 찍어보았다.
- 여자친구의 여자친구 - 내일은 개학일이다. 얼마전까지 머리 위에서 끝없이 빗방울을 떨구던 구름들이 이제는 아득히 멀리서 떠다니고 있다. 카페오레를 절반쯤 마시고 보니 컵의 벽면을 따라 지저분한 자국이 남는다. 여자친구가 오기로 한 시간이 34분 지나있다. 아니, 아직 28분이다. 커다란 유리창 밖에서 가게들의 불이 켜진다. 더러는 이미 켜져 있거나 혹은 오히려 꺼지고 있다. 무심하거나 유심히 그 모습을 바라본다. 휴대폰 불이 켜진다. 진동 모드 혹은 매너 모드일 것이다.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른다. ‘미안, 조금 늦었네. 지금 모퉁이야. 신호등만 바뀌면 바로 갈게.’ 모퉁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아니 조금은 신경 쓰인다. 비틀즈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떠오른다.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이다...